
저도 처음에는 탑골공원 앞에 새벽부터 줄 선 어르신들을 보면서 '무료급식받으러 오시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제가 몰랐던 노후의 민낯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88세 어르신은 새벽 6시 30분에 구리에서 출발해 서울역에서 아침을 먹고, 탑골공원에서 점심 도시락을 받아 저녁으로, 원각사에서 점심을 드십니다. 하루 세끼를 이렇게 해결하십니다.
중동에서 번 돈, 주식과 부동산에 다 날리다
이분은 젊었을 때 중동에서 9년간 일하셨습니다. 기사로 가서 과장까지 올라가셨고, 그 당시로서는 꽤 많은 돈을 벌어오셨다고 합니다. 송파에 땅을 샀는데 아파트 개발이 되면서 여섯 채를 받으셨다고 하더군요. 34평 아파트가 당시 9천만 원이었는데, 지금 같았으면 엄청난 자산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증권 투자를 하시다가 많이 잃으셨고, 상가도 사셨는데 절반 값에 팔아야 했다고 합니다. 중동에서 외로움에 바람도 피우셨다며 쓴웃음을 지으시더군요. 벌면 벌수록 새어나가는 돈, 재정 관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 돈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이분처럼 버는 족족 밑 빠진 독처럼 새어나가면, 결국 노후는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한 채 있어도 현금이 없으면
지금 이 어르신 부부는 아파트 한 채를 갖고 계십니다. 기초연금은 두 분 합쳐서 26만 7천 원 정도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아파트가 있으니 기초연금이 다 나오지 않는 겁니다. 관리비 내고, 전기세 내고, 이발비까지 생각하면 50만 원으로는 택도 없다고 하시더군요.
주택연금을 권해봤지만, 들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아마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남겨주고 싶으신 마음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이게 참 안타까웠습니다. 자식들도 각자 먹고살기 바쁜데, 부모님이 새벽부터 무료급식받으러 다니시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어떤 분들은 '아파트가 있으면 그래도 나은 거 아니냐'라고 하시는데, 저는 실제로 이런 어르신들을 뵙고 나니 좀 다르게 보이더군요. 집은 있어도 현금이 없으면 당장 밥 한 끼 먹기가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하루 세끼,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어르신의 하루는 이렇습니다. 새벽 6시 30분에 구리에서 출발해 서울역에서 아침을 먹습니다. 그리고 원각사에서 번호표를 받으려고 줄을 섭니다. 250명만 받는데, 늦으면 못 받으니까요. 원각사에서 점심을 먹고, 탑골공원에서 도시락을 받아 저녁으로 드십니다. 명동성당도 다니시는데, 거기는 화목토만 운영한다고 하셨습니다.
일요일에는 원각사에서 김밥을 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 세끼를 겨우 해결하시는 겁니다. 버스비 1,500원도 아까워서 지하철역까지는 걸어 다니신다고 하시더군요. 지하철은 만 65세 이상 무료니까요.
솔직히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젊었을 때 세금 다 내셨으니까 당연히 타셔야 하는 거다'라고 말씀드렸지만, 그게 위로가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복지 사각지대, 동네 경로당부터 제대로
일부에서는 '동네 노인 마을회관이나 경로당만 제대로 운영되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로 복지관에서 점심 한 끼는 제공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게다가 일부 경로당에서는 선임들이 분위기를 좌지우지해서 새로 오는 어르신들이 적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가짜 유공자 연금을 환수해서 진짜 어려운 어르신들께 급식 지원을 하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세금은 정말 필요한 곳에 써야 합니다.
어떤 분은 '얻어먹을 힘이라도 있으면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 겁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우리가 바라는 노후의 모습일까요?
저는 이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래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해도, 재정 관리를 잘못하면, 혹은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면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사회, 이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모습일까요. 주택연금이든 복지 지원이든, 어르신들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